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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모두들 아시죠?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다루는 등 매체를 통해 여러번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1992년 10월 28일에 이태원사건보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윤금이 살인사건.!!!

 

살해당시 사진이 올라와있기때문에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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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이 당시 26살.

 

윤금이

 1966년 10월 12일 전북 순창

5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난 윤금이씨.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찍 생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집에 여자가 윤금이씨 뿐이라 오빠들 등록비를 벌기위해 공장일에 뛰어들게 되지요.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공장일을 전전하다 큰 돈을 벌수 있다는 아는 사람의 꾀임에 넘어가 유흥업소에 

취직하게 됩니다.

 

윤금이씨는 평택 안정리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술집에서 일하던 접대부 였습니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접대부 생활을 하던 중

한 미군의 연락으로 접대를 나가게 되지요.

 

몇 일이 지나도록 윤금이씨가 가게로 출근을 하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윤금이씨의 동료 여직원이 윤금이씨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혐오주의***************************************************************************************

 

 

 

 

 

 

 

 

 

방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끔찍한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는데요.

어지러운 방 안에는 하얀가루에 뒤덮여 끔찍하게 살해된 윤금이씨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정체모를 하얀가루와 바닥이 피범벅이 된 상태였지요,)

 

윤금이씨의 동료는 얼른 마음을 추스리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고

출동한 의정부 경찰들도 시체가 유린되고 끔찍하게 훼손된 상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는 구타를 심하게 당한 상해가 있었고요. 온몸 구석구석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음료수병과 맥주병 2개가 그녀의 질 안에 박혀있었고 항문에는 철제 우산이 직장까지 꽂혀 들어가 있었으며

입안에는 성냥개비가 물려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많은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한 형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사건이였죠.

그렇게 윤금이씨의 사건이 조사되어지면서

그녀의 몸과 방안에 뿌려진 하얀가루의 정체가 세제가루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증거인멸을 위해 뿌려진것으로 보였습니다.

 

경찰은 즉시 맥주병에 있던 지문을 확보한 뒤,

형사 40여명을 동원하여 용의자 수색에 나서게 됩니다.

그녀의 직업과 살았던 지역을 고려하여 미군과 관련된 사건 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조사하던 중

사건발생 3일째인 10월 31일 드디어 범인을 찾게됩니다.

 

범인은 케네스마클 이병. 

당시 나이 20살

주한미군 제 2사단 제 20보병연대 5대대 본부중대 소속의 케네스마클 이병은 곧바로 체포되었으며

체포당시 더욱 경악스러웠던 사실은 케네스마클이 윤금이씨를 살해한 후

피가 튀긴 옷을 그대로 입고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파협정을 맺고 있었으며

이는 1967년 2월 9일에 발효된 협정으로, 목적은 미군부대의 법적 지위에 관한 한미 양국의 합의로

즉, 미군 소속의 군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피의자의 신병을 미군측에서 인도해야 한다는 사항이 있습니다.

미국의 요청이 없다면 아무리 강력한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라도 우리나라 법대로 재판이나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미군들도 마음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 성폭행을 할 수 있었죠.

그렇게 살인자가 누군지 알면서도 우리는 즉시 처벌을 하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를 검거했지만 미군의 요청으로 인도했고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에 한미협정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와 단체가 결성되게 됩니다.

 

1993년 2월 열린 첫 재판에서 케네스마클은 변호인을 통해 폭행은 인정하지만 살인은 극구 부인했습니다.

살인은 당시 윤금이씨와 연인관계였던 미군 램버튼이 자신과 윤금이씨가 함께있는 것을 목격하고

흥분해서 자신에게 달려들었고 자신과 다툼후에 윤금이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질 안에서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에 케네스마클의 지문이 발견되는 등 여러 결정적 증거가 드러나자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그리고 케네스마클은 끝까지 범죄를 부인하며 항소하게 되고, 12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5년형으로 감형받게 됩니다.

무기징역에서 15년형으로 바뀐이유는 

당시 윤금이씨 가족이 미국 정부에 4억원이 조금넘는 손해배상을 청구 했는데

미국정부는 7천만원으로 책정하고 유가족이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면서

어느정도 민사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형이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20살이였던 케네스마클은 평소에도 한국인을 무시했는데

교도소안에서도 교도관에게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파손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형을 1여년 남겨두고 케네스마클은 가석방이 되어 즉시 미국으로 출국하게 됩니다.

 

+ 케네스 마클의 최근 근황

- Kenneth Lee Markle III
- 사진과 이름이 예전 그놈과 매칭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 2015년 10월에 미국 메릴랜드에서 술 같은 걸 쳐먹고 운전하다 걸렸네요. 댓글에 살인자라고 달린 것을 보니 현지에서도 이자식이 살인전과자라는 것이 알려져 있을 수도 있어요. 한국사람이 댓글 달았을 수도 있구요. 먹샷 찍고 신원조회 때 살인으로 불명예제대했다고 나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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